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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교평리 강줄당기기
시도지정 > 충북 무형유산 옥천 교평리 강줄당기기
  • 한자명沃川 校坪里 강줄당기기
  • 영문명Unknown
  • 지정일/등록일2024-01-12
  • 관할시군옥천군
  • 이칭/별칭무형 30

문화재 설명정보

옥천 교평리 강줄당기기는 현재 충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는 마을 단위의 외줄다리기이다. 매년 정월대보름 저녁, 교평리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강줄당기기가 연행된다. 교평리가 편입되어 있는 청산면은 전근대의 청산현(靑山縣) 소재지였으며, 벼농사가 주된 생업이다.
강줄당기기 준비는 정월대보름 아침부터 시작된다. 1960~70년대에는 2~3일 전에 미리 집집마다 볏짚을 각출하였으나 현재는 마을회 또는 청년회 임원이 맡아 강줄당기기에 필요한 볏짚을 준비한다. 재배되는 벼 품종의 변화와 인구 감소, 고령화 등은 강줄 제작 방식과 규모에 영향을 끼쳤다. 현재 줄의 굵기는 직경 20cm∼25cm, 길이는 50cm 내외이다. 인구수가 지금의 두 배 이상이었던 1960~1970년대에는 강줄 길이가 지금보다 2~3배정도 길어 150cm 가량 되기도 하였다. 강줄은 1970년대 무렵까지 여섯 개의 줄을 꼬아 하나의 원줄로 만들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규모가 축소되어 네 개의 줄을 꼬아 만든다.
교평리 강줄당기기는 마을 지명의 유래가 된 청산향교 앞의 홍문거리에서 이루어진다. 홍문거리는 마을에서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 가장 넓고 긴 장소로, 향교 앞의 홍살문은 강줄을 만들 때 지지대로 사용되었다. 마을에서 향교는 엄한 곳이자 위하는 곳, 기운이 센 존재로 인식되어 있는데, 향교의 센 기운으로 잡귀가 범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홍살문에 줄을 걸어 만든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2000년도 이후에는 마을회관 앞에 강줄을 만들기 위해 별도의 지지대를 설치하여 더 이상 홍살문에서 줄을 만들지 않는다.
교평리에서는 강줄의 앞부분을 ‘용머리’, 끝부분을 ‘용꼬리’라 부르며 이를 강줄로 형상화 하여 제작하였다. 1970년대 무렵까지 용머리를 만들었으나 현재는 짚단을 단단히 묶는 정도로 만들며, 용꼬리 형태만 온전히 남아있다.
현재 강줄당기기의 연행과정은 ‘마을고사(향교 앞) → 강줄당기기(향교 앞 홍문거리) → 다리고사(청산교) → 다리밟기(청산교) → 고사(청산교 건너편 강변) → 강줄태우기(청산교 건너편 강변)’로 진행되고 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강줄을 당기기 전에만 고사를 지냈으나 마을 임원들의 의견과 주민들의 요청으로 고사의 횟수가 늘어났다. 각 과정마다 고사를 지내는 점에서 제의적 성격이 강하며, 정월대보름의 민속놀이인 줄다리기와 다리밟기가 어느 시점부터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줄을 ‘강줄’이라 부르는 명칭의 특징과 줄을 태우는 처리방식, ‘곰방대놀이’라는 아이들의 민속놀이가 강줄당기기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030 호
2024-01-12
단체
무형 30
무형유산 > 전통생활관습 > 절기풍속
문화예술 > 기타
-
옥천군

참고문헌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20, 『옥천 청산 무형문화유산 기초 학술조사 연구』.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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