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지재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김옥정 선생이 후학을 교육하던 서당이라고 전한다. ‘지재(止齋)’라는 명칭은 미호 김원행(金元行, 1703∼1772)선생이 건물의 배산인 구지봉(求止峰)에서 구(求)를 빼고 지재(止齋)라고 하였으며, 현재도 현판이 남아 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가공 주초와 덤벙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방형 기둥을 세웠다. 방안의 천장은 특이하게 널반자로 되어 있는데, 서적이나 판목 등을 보관하는 수납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당 입구에는 처음 건립 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연못이 남아 있다. 지재는 당시 유교적 특징을 나타내어 검소하며 소박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지역적 서당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한학(漢學)을 교육하던 서당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금릉김씨 종중의 재실로 이용되면서 문중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의미 있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