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심씨는 경상북도 청송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했다. 묘역은 청주시 잠두봉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에는 4세조 심덕부(沈德符) 부인 청주송씨 묘소와 5세조 심인봉(沈仁鳳) 묘소가 있다. 심덕부(沈德符 1328~1401) 자(字)는 득지(得之), 호(號)는 노당(蘆堂) 허강(虛江), 시호(諡號)는 정안(定安)이며 정랑(正郞) 용(龍)의 아들. 충혜왕(忠惠王) 말 음보(蔭補)로 좌우위참군(左右衛參軍)에 올라 소부윤(小府尹)을 거쳐 공민왕 때에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를 지냈다. 1375년(우왕 1) 예의판서(禮儀判書)로 강계도만호(江界都萬戶)를 겸직했고 밀직부사(密直府使) 의주부원수(義州副元帥)를 거쳐 1377년 서해도부원수(西海道副元帥)를 역임, 이듬해 밀직사(密直使)에 올라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에 올라 여러 차례 왜구(倭寇) 방어에 공을 세웠다. 1385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다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가 되어 1388년 요동정 벌에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출정, 위화도 회군 후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고,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경기좌우도도통사(京畿左右道都統使)에 올랐다. 이듬해 무고를 받아 한때 토산현(兎山縣 : 황해도 금천)에 유배, 그 후 좌시중(左侍中)으로 왕자 석(奭)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어 문하시중(門下侍中) 판도평의사사사(判都評議使司事)가 되고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봉해졌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고 1397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이듬해 영삼사사(領三司事) 1399년(정종 1) 좌정승(左政丞)에 올라 이듬해 사직했다. 심인봉은 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의 장자로 여말(麗末)에 출사하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두루 관직을 거쳤으며 1408년(태종 8)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동북면진무(東北面鎭撫)에 임명되어 난(亂)을 평정하였다. 이어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전임되었으나 관찰사 윤사수(尹思修)의 모함을 받아 면직되었다가 다시 동북면도절제사(東北面都節制使)에 등용되었고 세종 즉위년에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에) 제수되었다. 무술옥사(戊戌獄事)가 일어나 아우 온(溫)과 정( )이 피화(被禍)를 당할 때 연좌되어 진도(珍島)로 유배되었다가 1420년(세종 2) 본인의 원에 의해 청주로 옮겨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