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생리 삼생이 마을 북쪽 산기슭에 장충범(張忠範) 충신각의 왼쪽으로 나란히 세워진 단양장씨 일문(丹陽張氏 一門)의 정려이다. 장석영의 효행과 장택한 처 장수황씨의 효열행(孝烈行), 그리고 장동엽 처 청주리씨의 열행(烈行)을 한 정려에 합설(合設)하여 기리었다. 장석영은 본귀이 단양, 자는 자류(子類), 호는 금리(琴里)로서 충신 장충범의 후손이며 장택한의 아들이다. 장석영은『조선여승람(朝鮮輿勝覽)』에 그의 효행과 정려를 세우게 된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장택한의 처 장수황씨는 哲宗 7년(1856)에 만동묘에서 효부로 표창한 바 있고 고종 11년(1874)에 정려가 내려졌다. 장동엽의 처 청주이씨는 리정주의 딸로 26세에 남편이 죽자 따라 자결하였다. 지금의 정여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면은 홍살로 막았다. 이 정려에는 장석영 효자문과 장택한 처 장수황씨 효열문, 장동엽 처 청주리씨 열녀문이 합설되(合設)어 3개의 편액을 달았다. 현재 오른쪽으로부터 “열녀 단양장동엽처청주리씨지문 상지즉위이십구년 임진 육월 일 명정(烈女 丹陽張東曄妻淸州李氏之門 上之卽位二十九年 壬辰 六月 日 命旌)",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단양장석영지문 상지즉위이십구년 임진 육월 일 명정(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丹陽張錫永之門 上之卽位二十九年 壬辰 六月 日 命旌)", "효부 단양장택한처장수황씨문 상지즉위십일년 경신 정월 일명정(孝婦 丹陽張宅漢妻長水黃氏門 上之卽位十一年 庚申 正月 日命旌)"이라 판각한 편액이 나란히 걸려 있다. 정려의 오른쪽에는 순종 2년(1908)에 세운 "사인장객보부망비(士人張客補不忘碑)"가 있다.